월요일 아침, 회의실에서 나온 팀장님의 표정이 심각하다. 팀원들을 모으고 대표님의 지시사항을 초조한 표정으로 전달하기 시작한다. “28일까지 신제품 론칭하고 이번 주 목요일까지 홍보 콘텐츠 온에어 시켜야 되니까 다들 서둘러서 진행하도록” 전달이 끝나고 업무 시간 내내 이건 어디까지 했는지 누구 책임인지 시시각각 몰아붙인다. 일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지만 늦었다고 뭐라 할까 봐 무시하고 넘긴다. 그렇게 일은 끝났다. 하지만 일 처리에서 생긴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었고 결국 사고는 터졌다.
위 내용은 그동안 회사를 다녀보면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을 연출 해본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사실이 아니지만 저런 상황은 자주 마주친다. 특히 모든 게 급하고 중요해 보이는 스타트업에서 리더의 태도는 팀원들의 정서적인 측면에서 큰 영향을 준다.
인간에게 부정 편향이라는 본능이 있다. 인간은 부정을 감지해야 생존할 수 있는 역사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에 민감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생존에 이롭던 부정 편향은 현대 사회 속 직장에서는 오히려 생존에 위협을 준다.
팀원은 팀장의 눈치를 본다. 보고할 때도 보고 점심을 먹을 때도 본다. 하물며 휴가 결제를 맡을 때도 눈치를 본다. 눈치를 보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팀장은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인사평가를 할 수 있고 비용 결제 권한도 일부 가지고 있다. 그래서 팀장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팀원에게 영향을 주는 위치다. 그런데 영향력이 제도적인 권한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비언어적인 것들에서도 영향을 준다.
책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에서 총 동기 이론으로 성과를 높이는 동기로 즐거움, 의미, 성장이 있고 성과를 떨어뜨리는 동기로 정서적 압박, 경제적 압박, 타성이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정서적 압박은 조직문화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무조건 적인 속도만 고집하는 조직문화라면 정서적 압박은 높아진다. 그래서 바람직한 리더십은 공포와 수치심, 죄책감, 직원들 사이의 긴장감을 줄이는 것이라고 한다.
리더는 여유로운 품격을 가져야 한다. 회사에서 인정받던 팀장님께 들었던 이야기 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바빠도 여유로워 보인다.” 여기서 핵심은 여유로워 보이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바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다 바쁘고 정신없다. 그러나 리더는 여유로워 보여야 한다. 그래야 그를 보고 따라오는 팀원들은 안심할 수 있다. 이것은 성과를 높이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여기서 스타트업에서 더욱 리더가 여유로워 보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 스타트업은 인사팀이 따로 없다. 조직문화를 관리하는 부서도 따로 없다. 그래서 직원들이 알아서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매출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대표는 조직문화에 관심이 없어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과제만 제시할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직원들이 알아서 조직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 서로 일하기 바빠서 모니터만 보다가 퇴근한다. 이럴 때 권력이 올바르게 작동해야 한다. 스타트업에서 팀장급은 허리 역할을 한다. 팀원의 업무량을 조절할 수 있고 대표를 설득할 수 있다. 이런 권력을 가진 팀장이 나서야 한다. 그러라고 팀원보다 돈을 더 받는 거다.
조직문화는 대화를 바탕으로 쌓아간다고 할 수 있다. 사람끼리 하는 일에서 대화를 하지 않고 시작하기 어렵지 않겠나. 여기서 여유로워 보이는 팀장은 조직문화를 만들기 유리하다.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면담해봤자 무슨 대답이 돌아오겠는가. 인간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을 관찰하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이 초조하게 시계를 자주 쳐다본다면 대화는 이어지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여유로운 표정으로 질문한다면 깊고 본질에 가까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유로워 보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필자는 체력과 실력을 꼽고 싶다. 얼굴은 체력의 신호등 같다. 필자는 평소에 잘 웃지 않는다. 그래서 오해도 종종 받지만 웃는 것에 에너지 소모가 커서 웃음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런데 운동선수들이 훈련을 하면 얼굴들이 험악해지는 걸 봐서는 필자뿐만 아니라 대부분 힘들면 얼굴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여유로워 보이는데 표정이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체력이 뒷받침 돼야 여유로운 표정이 나올 수 있다.
그다음으로 실력이 중요하다. 실력 안에 메타인지가 있다. 업무에 대한 메타인지가 낮으면 여유롭기 힘들다. 이 일이 언제 끝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오늘 안에 무엇을 끝내야 하는지 모르면 여유를 찾기 전에 멘틀이 터질 것이다. 체력을 바탕으로 높은 메타인지와 일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여유로워 보일 수 있다.
몇 달 전 CEO를 대상으로 경영 수업을 하는 교수님의 인터뷰를 봤다. 교수님께서 수많은 대기업 CEO를 만나보니 공통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가로운 게 아니라 할 일을 끝내고 교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여유가 느껴지는 것 같다고 하신다.
회사는 한가하면 망한다. 그러니 직원이 한가로울 날은 오지 않는다. 그러나 리더는 성과를 높이고 조직문화를 만들고 싶다면 여유로워 보여야 한다. 사실 이 글은 필자를 보고 한가해 보인다는 실장님의 한마디에서 시작했다. 여유로워 보이는 게 나쁜 걸까? 군대에서는 이등병이 걸어 다니는 걸로 욕을 먹기도 하지만 과연 회사에서도 그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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