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의도와 능력에 관한 문제다. 즉, 올바르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것과,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에 관한 문제다. - 데이비드 데스테노, <신뢰의 법칙>, p.139
서울 소재 모 스타트업에서 일 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어간다. 시간 참 빠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속한 이 조직의 크기는 상당히 작다. 10명도 되지 않는 팀원으로 매일 다양한 일들을 꾸려나간다. 어찌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잘 일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출중한 것은 당연지사, 그 외의 요소를 생각해 보았을 때 다다른 결론은 바로 ‘신뢰’다. 비록 내가 이 곳에 몸담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팀원들 간의 신뢰는 내게 금방 와 닿았다.
우리가 신뢰를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근거는 ‘평균적’이라는 개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신뢰 함으로써 ‘평균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차원에서 축적된 이익 들이 잘못된 신뢰가 낳는 잠재적인 개별적 손실을 훌쩍 능가하기 때문이다. - p.28
<신뢰의 법칙>에 따르면 신뢰는 우리에게 장기적인 이익을 제공한다. 다른 사람을 신뢰 함으로써 평균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흔히 인용되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처럼 서로가 스스로 만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을 했을 때 보다, 상대방을 믿고 다소 이타적인 선택을 했을 때 결과적으로 윈-윈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팀에서 느낀 '신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너지를 빨리 내야만 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신뢰는 필수였다.
그렇다면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어떤 행동 강령이 필요한가? 간단히 말하자면 ‘바닥까지 보이는 투명함’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컴퓨터가 아닌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유인원 시절부터 우리는 나를 에워싼 다른 존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는 늘 눈치껏 알아서 행동하도록 진화해왔다.
인간의 마음은 정보만 따로 배우는 형태로 진화하지 않았다. 그 대신 ‘누군가’로부터 배우도록 진화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학습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만든다. - p.115
눈치껏 행동하는 건 다 좋은데, 그로 인해 과하게 넘겨짚는 경우가 생긴다. 상대의 사소한 몸짓 하나로 상황을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생기고 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인지적인 편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편향이 생기게 되면 자연스레 상대에 대한 신뢰도 급감하게 되고, 이내 관계를 틀어지게 만든다.
조직 그 자체인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상사의 표정만 보고 그 날의 심기를 판단하고, 내 업무 상 실수를 조금이라도 감추려고 노력한다. 바로 털어놓았더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았을 것을 괜한 오해로 인해 숨기고, 이내 더 큰 문제로 비화하게 되고 만다. 그렇게 큰 문제를 터뜨리게 되면 조직 내에서의 인간관계는 흔들리게 되고, 입지는 줄어들게 된다. 눈치껏 하는 행동의 파괴적인 결과다. 팀원 하나하나의 끈끈한 연결이 중요한 스타트업에서 이러한 선택의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
닭이냐 달걀이냐? 눈치냐 신뢰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시도 중 하나로 위에서 말 한 우리 팀의 ‘신뢰’를 예로 들어 보고자 한다. 우리 팀의 특징 중 한 가지는 바로 ‘가감 없는 피드백’이다. 우리는 서로의 업무에 대해서 ‘빠꾸’없이 이야기한다. 잘못된 점은 잘못됐다고 바로 지적을 하며, 지적을 당한 사람은 그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고 바로 개선을 한다. 우리 팀에서는 기본적으로 숨김이 없다. 아니, 굳이 숨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다.
또 한 가지는 업무상 본인이 한 모든 행위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점이다. 여느 스타트업에서나 쓸 법한 협업 툴을 이용해, 스스로가 한 모든 것에 대해 기록하고 공유한다. 본인의 업무 진척 상황, 거래처와 나눈 이야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한 점은 무엇이고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빠짐없이 기록한다. 기록 및 공유를 게을리한다 싶으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진다. 왜 다른 사람이 모르게 일을 진행하냐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매사에 ‘눈치를 보며 숨기는 것 없는’ 투명함을 강조한다. 생각 없이 지내다가 생기게 되는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오해가 쌓이고 쌓여서 곪아버리는 순간, 해결책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일이 틀어진 원인을 추궁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에 다다르지 못하게 된다. 일 분 일 초가 곧바로 돈이 되는 스타트업에서 이러한 실랑이는 꽤나 큰 치명타가 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 간의 신뢰를 구축해 나가면서 불신으로 인한 비용을 최소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더 큰 시너지를 만들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팀의 일원이 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참내기가 팀의 신뢰에 대해 운운하는 건 어찌 보면 주제넘는 일 같기도 하다. 내가 이해한 그들의 ‘신뢰’는 사실 허상에 지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회사 대표가 나를 뽑을 때 ‘믿을 만한 사람’만 뽑는다고 했던 그 말들도 사실은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신뢰하려 한다. 신뢰가 없으면 시너지는 일어나지 않으며, 여차하면 저자가 말한 것과 같은 '재앙적 의사결정'의 단초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스타트업인 우리에게 주어진 리소스가 너무나 부족하고, 위태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관계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안에 서려있는 편향을 이해한다면, '신뢰'는 그리 다다르기 어려운 목표는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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