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는 삶
나심 탈레브는 그의 저서 <안티프래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새가 조류학자 덕분에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는 스스로 날개를 퍼덕이기 때문에 날아갈 수 있다. 그들의 가벼운 몸을 가지고 추락할 가능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박차 올랐기 때문에 창공을 날 수 있다. 책상 위에 앉아 하늘을 나는 방법을 아무리 연구한다 한들 실제로 하는 날갯짓 한 번에 못 미친다. 그는 이런 식으로 글자 뒤에 숨는 지식인들 혹은 권위자들 = 에이전시의 문제를 지적했다. '책임'은 지려하지 않고 주둥아리만 나불댄다는 것이다. 온갖 현학적인 말들로 다양한 주장들을 늘어놓곤 하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한 채 잘못된 논란만 불 지피 곤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건? 뒷짐 지고 사태를 관망하는 것뿐이다.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노벨상이니 뭐니 하며 명예만 얻는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자주 보인다. 우리는 좀처럼 사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당면한 문제를 어물쩍 넘길 수 있을까 에만 골몰한다. 문제가 나타나면 그것을 해결할 생각을 하기 보다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고만 한다. 우회하는 길이 분명 멀고 비효율적이라도 그 순간의 체면을 위해 눈을 꼭 감는다. 그런 식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종양처럼 곪아간다. 이처럼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행태는 우리 삶의 곳곳에서 나타나며,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더욱 현저하다.
우리는 눈 앞의 부하직원이, 상사가, 동료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많은 경우 묵과한다. 그 자리에서 감히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혹자는 이를 동양적인 맥락에서 그 원인을 찾곤 한다. 서구의 그것 처럼 우리는 좀처럼 스트레이트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욕설은 논외로 하더라고, 우리는 에둘러하는 표현에 능하다.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 하는 기대를 한다. 오죽하면 옆 나라 일본에서는 '분위기를 읽다'라는 표현이 상투어처럼 쓰이고 있을까. 그만큼 우리의 '정서상'직설적인 말하기는 진입장벽이 높다.
이러한 태도는 나심 탈레브가 말한 것과 같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책임 회피에 가깝다. 어차피 터질 문제를 그 자리의 민망함을 피하고자 덮어버리면 해결이 될 리 만무하다. 결국에 곪고 터지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문제였던 것이 점차 심각한 것으로 비화된다. 그만큼 어물쩍 책임을 지지 않고 넘어가는 태도는 비효율적이고 조직에 재앙을 가져온다.
현실과 직면하기
수십조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 브릿지워터의 CEO 레이달 리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현재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야 산타클로스와 이빨 요정의 존재를 알아차리도록 내버려 두는 것과 같다. 진실을 감추는 것이 단기적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을 더 현명하거나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 같은 책
그는 그의 회사를 극단적인 솔직함 위에 세웠다. 그는 결코 사람들에게 산타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그의 팀원들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하지 않았다. 매사에 그는 극단적으로 솔직했고, 해야 할 말은 다했다. 잘잘못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해결했고, 거기에는 투명함만이 존재했다. 피드백은 상시적으로 이루어졌고,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곧바로 깨닫고 개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방구석에서 컴퓨터 몇 대로 시작한 작은 회사는 전 세계의 부를 주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핵심은 이것이다. 그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어물쩍 넘어갈 수 있었음에도 극단적인 솔직함으로 직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고, 그들을 개선시켰다. 직원들은 그러한 솔직함에 응했고, 뛰어난 성과로서 보답했다.
많은 조직에서 일어나는 '책임 회피'는 브릿지워터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가 그에 정면으로 맞섰다. 행여 그 과정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실패는 곧 성장을 위한 발판이기에, 그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를 위한 재료로 활용했다. 과연 우리가 몸 담은 조직에서 이러한 문화는 존재하는가? 없다면 적용할 수 있는가?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고통 + 반성 = 발전
영웅들은 영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의 사건이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영웅이 된 것이다. 레이달리오, <원칙>
우리는 영웅적 존재를 막연히 숭배한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고, 그렇게 하늘이 만들어 준 기회를 잘 잡고 올림푸스 산으로 올라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일은 우리 같은 범인들에게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며 지레 포기하고 만다. 하지만 레이 달리오의 생각은 다르다. 영웅들은 '영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존재다. 레이 달리오도 우리와 같은 존재다. 같은 베이스에서 출발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의 사건이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밟아왔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란 무엇인가? 발전의 과정이다. 어떻게 발전하는가? 레이 달리오의 말에 따르면 고통 + 반성 = 발전이다. 그렇다. 결국에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하고 그에 맞서 처절히 실패하고, 실패를 통해 반성하고 그 반성을 다음 단계를 위해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마취 없이 뼈를 깎은 관우 같은 처절함을 가지고 굳세게 나가야 한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피해서는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범인으로서 남게 될 뿐이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특히 신입 사원일 때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많이 직면한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환경에서 우리에게는 매일매일이 도전이다. 도전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분투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수를 하는 건 당연하다. 상사의 구박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좌절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과정 없이는 회사에서 제대로 된 밥값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그저 모르는 상태로 놔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된 지식과 경험을 습득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 부끄럽다고, 혼날까 봐 두려워서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덮어두기만 한다면 어떻게 반성할 수 있을까? 어떻게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나 또한 한 달이 지나긴 했지만 아직 신입 사원이다. 업계도 그렇고, 업태도 그렇고 같이 일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이다. 일본에서 3년간 직장생활을 했으나 그간의 경험이 무색할 정도로 매일 매일이 새로운 도전이다. 당연히 실수도 연발한다. 모르는 건 시도 때도 없이 생겨난다. 그럼에도 나는 그 과정을 최대한 즐기려 한다. 신입의 입장으로 되돌아가 제로베이스부터 모든 걸 구축해 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성장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조직과 업계에 적응하게 되면 이렇게 부딪히는 모습도 줄어들지 모른다. 좀처럼 책임을 지려 하지 않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레이 달리오가 말한 고통 + 반성 = 성장이라는 명제를 떠올려야겠다. 그 극단적인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 사실을 잊는 순간 나는 퇴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지는 삶, 극단적인 솔직함, 잘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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