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의 비즈니스 소개서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에 투입됐다. 오래간만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된 탓에 의욕적으로 이런저런 문구를 넣어보며, 내 나름대로의 창의성을 발휘해봤다. 그동안 책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보고 듣고 읽은 다양한 표현들을 써보며 스스로 만족했다.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듯 그것의 경중에 상관없이, 초안이 그 시작이 된다. 간단한 초안을 만들고 그 초안의 방향성이 맞는지 다른 이와 함께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이 없이 프로젝트를 성급하게 발전시키면 결국에는 시간과 인건비의 낭비로 이어진다. 그런 탓에 나도 내 창의성을 드러낸 초안을 대표에게 내밀었다. 내심 내가 쓴 표현들에 만족하고 있었고, 그 안들이 금세 통과될 것이라는 착각과 함께.
결과는 당연히도 전면 수정이었다. 내가 노션에 올려 놓은 초안들은 내 눈 앞에서 보기 좋게 부정당했고, 가차 없이 첨삭되었다. 노션이라는 툴의 특성상 공동 작업이 가능하고, 타인이 가하는 수정 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내 치부는 실시간으로 낱낱이 파헤쳐졌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대표는 내게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주었다.
'실화냐?'
비즈니스 소개서를 무슨 애들 장난 처럼 쓴 것 같다는 피드백과 함께, 좀 더 알기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고쳐야 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나는 내 나름대로 센스 있는 문장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자만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번 언론 보도 자료를 작성한 이야기와 같이, 모든 글에는 그 목적에 걸맞는 스타일이 있다. 그 스타일에 맞는 글을 쓰지 않고 자기 생각에 빠져서 일필휘지 휘갈겨 내린 글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내가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채로 써 내려간 의미 없는 문구들이 그러하다.
나는 애초에 우리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체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이 서비스에 접근하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그들이 문제없이 서비스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지에 대해 나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그럴싸한 표현들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결과는 끝 모를 창피함이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길게든 짧게든 글을 쓸 일이 많아졌다. 그것은 한 두 문장 짜리 간단한 소개문구부터 장문의 이메일이 될 수도 있고,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IR덱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주주 총회에 필요한 자료가 될 수도, 언론 보도 자료가 될 수도 있다.
대기업의 경우 그러한 자료들을 만드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알아서 다 만들어 준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든 자신의 부족한 역량을 쥐어 짜내서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잘해야 한다. 글 쓰는 센스가 없다면 그 센스를 길러야 하고, 그를 위한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게 내가 지난 2달 간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면서 느낀 한 가지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앞서 말했듯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리라. 목적이 불분명한 글만큼 읽는 이를 지치게 하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항상 런웨이 때문에 고심하는 스타트업 씬에서 그러한 기본적인 소양은 필수다. 소위 시간 때우기용 '허튼짓'을 할 여유는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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